우울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캐나다 생활 3년 차...

 

"캐나다에서 3년 살았으면 영어 잘하겠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는데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나의 영어 실력은 그대로이다.

남편이 캐나다행을 결심하고  나는 부랴 부랴  필리핀 영어 선생님과 화상으로 매일 1시간씩 영어 회화 수업을 5개월 했었다. 그리고 영어 쉐도잉 하는 어플에 가입해 몇 달 한 것이 다이다. 캐나다 오기 전 캐나다에 가면 영어 공부하는 게 훨씬 수월하고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서 2-3년 정도 캐나다에 살면 영어를 잘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그때의 자신감과 기대가 컸기에 영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처음 왔을 때 보다 실력이 더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자신감도 많이 잃었다. 작년부터 신장이 안 좋아 투병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제일 우선이라 생각하고 한국 건강서적과 관련 동영상들을 보면서 영어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캐나다이고 어딜 가도 영어를 써야 하는데 이렇게 영어 공부를 등한시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이 밀려온다.  동네 산책을 나가서 아이 학교 엄마를 만나도 반가운 마음보다는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간단한  말들과 담소는 나눌 수 있었는데 요즘 완전히 영어 귀는 닫고 사는 것 같다. 쉬운 영어를 하는대도 못 알아 들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너무 영어를 멀리 한 것 같아서 자책하게 된다.

 

아이는 이미 한국말 보다 영어가 편한지 혼자 놀 때 혼잣말도 영어로 잠자다가 잠꼬대도 영어로 할 정도의 수준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영어보다 한국말을 잊어버릴까 신경을 써야 하는 지경이다. 확실히 아이들은 언어 습득 능력이 굉장히 빠르다. 어른은 영어를 사용할 때 한국말로 한 번 생각하고 영어로 바꾸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이는 모국어 쓰듯이 바로 영어로 말하고 알아듣는다. 부럽다. 그래서 이민생활을 오래 하신 한국분들이 외국에 오래 살았는대도 영어를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ㅠㅠ

 

아이를 일주일에 한번 한글 교실에 보내고 있다. 화요일 저녁 6시에서 8시 30분까지 2시간 반 가량 한글 공부를 한다.

사실 그 정도는 아이가 한글을 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집에서 매일 조금씩 읽기, 쓰기 공부를 시키고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말을 사용하게 교육을 시키고 있긴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점점 영어가 편해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학교에서 6시간씩 영어로 교육을 받고 친구와 영어로 얘기를 하니 편해질 수밖에.

 

캐나다에서 20년을 산 지인이 귀띔해줬다. 아이에게 꼭 한국말을 가르치라고 했다.

그분은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캐나다에 왔었는데 영어를 못해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서 집에서 항상 영어만 사용하게 하였다. 그분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 어린 시절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학업을 못 따라가는 아이를 위해 영어만 사용하게 하였는데 그 결과 아이는 한국말은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다 성장한 아이는 엄마를 원망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 친천들을 만나러 한국에 갔다가 한국말을 못 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지난 번 우리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사람들끼리 한국말이 다 통화지 않으니 불편하긴 했다.

 

나는 아이에게 " 집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해.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와 대화를 못하잖아"라고 얘기하며 한국말을 사용하게 하고 티비 프로그램들도 한국말로 된 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아이는 한국말을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고 나와 남편은 영어를 못 해 아주 애를 먹고 있다.

 

남편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해외 출장도 많이 다니고 해외 파견 업무도 했었고 영어로 회의도 진행했었다. 그래도 10-20프로 덜 들린다고 힘들다고 했다. 몸이 피곤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또 덜 들린다고 한다. 남편은 캐나다에서 컬리지를 다니고 캐나다 회사에 입사를 했고 심지어 캐네디언도 들어가기 힘든 좋은 회사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영어가 클리어하게 모국어처럼 들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외국에서 살려면 언어라는 큰 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가족들이 한국사람이고 한국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에는 영어를 맘먹은 것처럼 쉽게 배우기가 힘이 든다.

내가 아는 지인 중 남편이 캐네디언인 분이 몇 분 있다. 그분들은 영어를 잘한다.

매일 일상에서 영어에 노출이 되고 영어를 사용해야 영어가 느는데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쉽지가 않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인 사람들에게 결혼하기 전 한국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어학연수를 가서 영어를 배우라고 조언해준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쉽지가 않다. 나도 아이가 좀 더 크고 여력이 생기면 혼자 한국과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1년 정도 아니 6개월이라도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캐나다는 착한 나라이고 여유를 갖고 살게 해준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하고 넘어야 할 산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작년 건강에 문제가 생겨 많이 아팠다.

자가 면역질환 IGA사구체 신염이다.  사실 확진을 받을 때까지 몇 달을 고생을 했다.

어지럽기 시작해서 병원에 갔더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9.8(12가 정상)이 나왔다고 빈혈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때는 철분제만 잘 챙겨 먹으면 낫는줄 알았다.

그런데 빈혈 치고는 그 양상이 너무 격했다. 어지럽고 숨이 차고 팔이 저리고 머리를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지고

응급실에 가서 여러가지 검사 결과가 방광염으로 진다하고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항생제를 열심히 먹으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위가 아파서 도저히 항생제를 먹을 수도 없었고 심지어 밥도 먹기 힘들 정도로 위장이 아팠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위장약을 처방받아서 먹게 되었다.

처방해준 항생제를 다 먹고도 차도가 없었다. 

병원을 옮겨 다니며 검사를 했는데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스페셜 닥터를 만나서 확진을 받을 수 있었고

6개월 정도 병을 정확히 알지 못해 매 달 피검사 소변 검사를 받았다. 빈혈이 있어서 피검사 후 항상 어지럽고 팔이 저려왔다. 생 고생을 다해서 병을 알게 되었지만 병원에서 해주는 것은 또 약을 처방해 주는 것이었다. 

처방해준 약으로 신장이 좋아졌냐고? 헛웃음만 나온다.

병원에서는 검사만 한다. 처방해준 약이라곤 혈압을 낮추는 약 몇 알이 다이다.

그리고 나보고 저혈압이라 혈압을 낮추는 약을 먹게 되면 어지러울거다고 한다. 그러면 약을 먹지 마란다.

그리고 몇 달 후에 결과를 보자고 한다.

이 무책임한 의사의 처방에 내가 할 말을 잃었다.

 

 

결국 나는 자연치료로 돌아섰다. 하지만 양방에서 하는 소변검사, 피검사는 계속 병행할 생각이다.

나의 상태는 양방에서 체크를 해가며 자연치료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 내가 이 병을 이겨 내려면 이놈이 어떤 병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가 면역질환에 대한 책들과 유튜브의 강연을 들었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자연치료이든 몇 달 동안 계속 공부를 했다.  양방은 한번 나빠진 신장은 다시는 좋아지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버렸다. 그러나 자연치료는 관리를 잘한다면 완치할 수 있다였다.  당연히 회복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설명이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양방도 얘기를 들어보면 나빠져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유에도 설득력이 있고 논리로 이길 수가 없다. 그러면 임상실험이 답이다. 그래서 내 몸으로 현미 채식을 하며 경과를 지켜본 결과 자연치료의 말이 맞았다. 현미 채식 후 병원에서 소변검사를 했을 당시 단백뇨와 혈뇨가 절반이 줄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치료의 관련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신세계를 만난 것 같은 흥분과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한편으로는 막막함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여태껏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제대로 진실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현대 의학의 주류에 있는 사람들도 이 진실을 흐리게 만들 뿐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무시하고 하대한다.

내가 아팠으니 망정이지 아프지 않았다면 고기며 우유며 계란 생선 등을 몸에 좋다며 양껏 챙겨 먹었을 것이다.

멀리 내다볼 것도 없이 42살인 시누가 난소암 3기 말이며. 45살 이모가 갑상선 암에 걸렸다.

시누는 고기와 술을 즐기는 사람이고 이모는 빵순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빵을 좋아한다.

가족력도 없다. 왜 병에 걸렸는지 원인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 아프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현대 사회의 공해와  스트레스로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

왜 동물성 단백질과 가공식품과 밀가루에 대해서 경각심을 주지 않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진실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저자 콜린 캠벨은 미국 코넬대학교 영양생화학 명예교수이며 미국암연구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오랫동안 미국 보건의료 정책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식품 및 건강과 관련된 여러 정책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1950년 후반부터 영양 상태와 암의 인과 관계를 연구하여 식물성 식품이 질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치료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식습관과 질병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중국 연구'는 역사상 가장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건강 및 영양학 연구로 꼽힌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 아들이자 의사인 토마스 캠벨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무엇을 먹을 것인가'집필. 미국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콜린 캠벨의 "당신이 병드는 이유"를 읽으며 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진실에 대해 알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캠벨이 연구에 매진한 지난 50년은 견고한 이윤의 장벽 앞에서, 비주류(동물성 단백질이 나쁘다고 주장)라는 높은 편견 아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결과로 증명된 자신의 견해가 동료 연구자 및 전문가들, 언론 , 정책 결정자들, 시민단체들, 기업들에 의해 묵살되는 것을 지켜본 세월이기도 했다. 

  임상실험으로 이루어진 결과들을 볼 때  한 그룹의 생쥐들에게 5프로의 단백질을 주입하고 한 그룹의 생쥐들에게 20프로의 단백질을 주입하고 똑같이 나쁜 환경에 노출시켰을 때 5프로의 단백질을 주입한 쥐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고 20프로의 단백질을 주입한 쥐들은 모두 암에 걸렸었다. 

이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런데 이 결과를 세상에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견고한 이윤의 장벽 앞에서 묵살돼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성 단백질에 대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한 콜린 캠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힘들지만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겠다. 

 

 

 

 

 

 

 

캐나다에서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 도시락 싸기!!ㅎㅎ

나는 이제 캐나다 생활 3년 차가 되었다. 

한국에서 캐나다 오기 전 준비하면서 신경 썼던 부분이 도시락이었다. 그래서 예쁘고 실용성 있는 도시락 통과 가방. 수저통을 설레는 맘으로 구입했었다.

그때는 분명히 설레는 맘이었는데....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해서 그때는 야심 차게 도시락을 잘 싸주겠다 다짐했었다.  고등학교 때 도시락에 얽힌 나쁜 기억 때문에 내 아이에게 도시락을 잘 싸주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예술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부유층 아이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아주 평범한 맏벌이집 부모의 딸이었다.

그래서 도시락을 같이 먹는 멤버 중의 한 명이 밥 먹을 때마다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55명이 있던 교실에서 대판 싸웠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지만 그때는 그게 상처였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도시락을 잘 싸주겠노라 다짐을 하며 가격이 좀 비싸지만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구입을 했다.

일 년동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줬던 것 같다. 건강한 음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일년 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도시락 싸는 것이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도시락 반찬거리가 걱정이고 또 뭘 싸야 하나 매일 고민이었다.

아이 도시락과 남편 도시락 그리고 간식도 항상 챙겨줘야 했었다.

슬럼프 때 남편 도시락은 싸고 아이 도시락은 학교에 샌드위치와 피자를 신청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맛이 없는지 매일 거의 남겨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엄마, 도시락 싸줘. 샌드위치랑 피자 맛이 없어"하며 툴툴거리는데 더 이상 샌드위치와 피자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도시락을 열심히 싸기 시작했다. 

 

이제는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자동 반사적으로 도시락을 싼다.

잠자기 전 밥솥에 밥을 예약해 놓고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주방으로 가서 싱크대와 냉장고에 있는 식자재를 꺼내서 능숙하게 도시락을 싼다. 지난번 이모네가 토론토로 여행을 와서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내 도시락 싸는 것을 보더니 감탄을 했었다.

베이컨은 먹기 좋게 잘라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각종 야채도 미리 채 썰어서 종류별로 반찬통에 넣어 일사천리로 도시락을 싸는 모습에 아주 놀라워했다. ㅋㅋㅋ

이제는 도시락 싸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았을 때는 남편은 회사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했고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급식을 했으며 도시락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나와 아이가 먹을 요리만 조금 신경 쓰면 그뿐이었다. 행여나 식재료를 조금 넉넉하게 사놓으면 냉장고 안에서 상해서 버리곤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맛집을 다니며 외식도 자주 했었다. 이런 호사스러운 일상들은 이제 먼 나라 얘기가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단연 도시락 싸기가 엄마들에게는 가장 부담스럽고 힘든 부분일 수도 있다.

캐나다의 나의 지인들도 도시락 뭐 싸 주는지 만날 때마다 물어본다. 그리고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도시락 안 싸도 돼서 너무 좋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필리핀에 살고 있는 아는 언니도 캐나다에 관심을 보이다가 도시락 얘기를 하니

"나는 못한다. 애 셋 남편 도시락 나는 못한다 못해." 하며 손사래를 쳤다.

필리핀에서는 가사도우미에게 20만 원만 주면 아이 셋 도시락에 집안일을 싹~ 다해준다며 이것 때문에 한국도 못 갈 판이라고 읍소하였다

 얼마 전부터 남편이 너무 일찍 출근을 하는 바람에 아침 도시락까지 챙기게 되면서 좀 힘들어졌다.

남편 아침 ,점심, 간식, 아이 점심, 간식 도시락..

남편은 아침과 점심 도시락이 메뉴가 같으면 지겨울까 봐 다른 메뉴로 싸주는데 힘에 부친다.

그래도 작년부터 내가 아프면서 음식의 중요함을 깨닫고 남편 도시락은 건강식으로 싸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캐나다 토론토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이다. 그리고 기후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일괄적으로 급식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이 캐나다 회사를 두 군데 다녔었는데 회사 내에서 샌드위치와 햄버거 커피정도로 팔고 모두 도시락을 준비해서 왔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캐나다 회사도 도시락을 준비해서 온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락은 필수항목이다.

그래도 좋은 점들이 많기 때문에 이 정도의 수고로움은 감수할 수 있다.

 

 

사진을 올리다 보니 남편 도시락 사진은 많은데 아이 도시락 사진은 없다. 다음에는 아이 도시락 사진도 찍어놔야겠다.

 

 

 

남편 아침(견과류,말린 열매,월남쌈), 점심 도시락(현미밥, 청경채,연근,무말랭이)

 

 

남편 아침(현미 견과류 김밥,사과), 점심(현미밥,비건 생선까스,샐러드 ,무말랭이)

 

아침 (딸기잼과 비건 크림치즈를 넣은 통밀 식빵, 샐러드,견과류와 말린 열매들) ,점심 (현미 야채 볶음밥, 무말랭이)

 

 

 

남편 아침(월남쌈, 샐러드),점심(현미 버섯 야채 볶음밥, 김치, 나또)

 

 

 

 

남편 점심도시락 케일쌈밥(현미밥,견과류 쌈장)

 

 

현미밥, 김치 두부 마늘쫑 우엉

 

나는 뜻하지 않게 몸이 아프게 되어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한 달가량 채식을 하고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했을 때 단백뇨와 혈뇨가 반이상 줄어 들었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신장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사구체신염이다. 단백뇨와 혈뇨의 양으로 나의 신장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사구체의 모세혈관에 염증이 생겨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출해 줘야 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대 의학에서는 한번 나빠진 신장(사구체)은 다시 좋아질 수가 없고 최대한 관리해서 만성신부전증을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처음에 나도 많이 좌절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자연 치료에서는 관리를 잘 하고 노력한다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책과 유튜브의 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소중하고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건강해 지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나도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식이가 중요하고 식이와 운동이 병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채식에 대해 신세계를 경험하고 우리 식탁에는 더 이상 동물성 단백질이 올라오지 않는다.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처음에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도 건강이 좋아지면서 확신이 생겼고 나도 건강해지면서 신이 나고 즐거웠다.

 5개월째 채식을 하고 있고 순항 중이다.

나는 다행히 채식주의자를 존중해 주고 채식의 인식이 좋은 캐나다에서 시작하게 되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많은 식당들이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있고 메뉴 페이지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 외식을 하러 태국 쌀 국숫집에 가도 베지테리언 메뉴가 따로 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해 준다. 

특히 토론토는 다국적 도시여서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다.

다른 음식에 대한 존중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교 문제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당이든 고기를 빼 달라고 하는 것은 보편화된 일이다. 한국처럼 예민한 사람 별종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무거나 잘 먹어야 미덕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편식이 심한 사람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름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다.

이번에 내가 많이 아파보니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알게 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토론토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접할 수 있다. 

내가 채식을 하면서 이제는 외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토론토에서는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내가 관심이 없어 몰랐을 뿐 이미 우리 집 근처에만 비건 베이커리, 커피숍,식당들이 많이 있었다. 

사실 내가 아는 지인의 남편이 캐네디언인데 종교 문제로 채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채식에 대해 별 인식이 없던 나는 어패류는 상관없이 먹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지인분이 우리집을 방문했을때 내가 아끼던 마른 오징어를 몇 마리 드리니 처음에 망설였다. 남편이 채식하는 사람이라고 ,, 그런데 그분도 드시고 싶으셨는지 남편 몰래 가져가셨다.그때는 그분을 참 딱하게 봤던 것 같다. 이 맛있는 것을 못 먹다니.. 어쩔꼬?

 

참 사람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남을 비난하면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기지 않았을까?? 내가 청천벽력같이 채식을 하다니..

나의 인생을 나눌 수 있는 큰 계기가 된 셈이다. 채식 하기 전 나와 채식 후의 나로 나뉠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고 얘기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남편과 내가 아끼는 덴마크 베이커리 집이 있다.

커피도 빵도 케이크에도 유제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커피 라테에도 동물성 우유 대신 식물성 우유가 들어간다.

그리고 빵에도 통 밀가루(정재 되지 않은)를 사용하고 우유 계란

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맛은 그냥 그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천국의 맛이다.

우리가 아껴서 가는 비건 베이커리 집이다.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한다.

채식은 어렵지 않고 즐거운 것이라고

거기에 건강까지 따라와 주니 이렇게 멋진 것이 어디 있겠냐고!!

 

우리가 사랑하는 데니쉬

                 

유럽 스타일로 운영한다. 시간 잘 맞춰서 가야한다.

 

 

한국 어르신들과 주위분들은 채식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지 하고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지만

난 내 몸이 답해준다. 동물성 단백질은 1g도 필요 없다고..

나는 더 이상 생리전 나를 힘들게 하던 입 안 염증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혈뇨와 단백뇨도 많이 호전 중이다.

아직 완치가 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지만 5개월 동안 채식을 했으면 문제가 생겨도 아주 이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참 많이 아팠었다.

어지럽기 시작해서 숨이 차고 팔이 저리고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고 목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너져 내리고

공황증도 같이 겹쳐서 사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그 생각도 잠시.. 나에게는 기적 같은 내 아들이 있었다.

살아야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하루의 감사를 느끼게 해 준 날들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아이와 남편과 함께 동네 한 바퀴 걷는 일상의 소중함

베프와 전화로 수다 떠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날 들.. 건강의 소중함과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해 준 날들.. 감사하고 감사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은 맛이 굉장히 부드럽고 좋다고 한다. 

 

포크가 특이하다. 덴마크 스타일인가?

 

모양까지 이쁜 너를 어쩔껴?아까워서 먹겠어?

?

나의 사랑 나의 기적

 

 

눈과 입이 즐거운 곳

작년 여름쯤 아이가 7살(junior kindergarten) 때 학교 스쿨버스 안에서 백인 남자아이 2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캐나다 토론토는 유치원(Junior kindergarten, senior kindergarten )2년도 의무교육에 속하며 초등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한다.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같은 스쿨 버스를 이용한다.

 

그 날 남편이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가 아이와 집으로 들어왔는데 아이가 엉엉 울고 있었다.

왜 우냐고 이유를 묻자 스쿨버스 안에서 백인 남자아이 2명이 자기를 펀치 하고 침을 뱉었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심정은 당장이라도 뛰어가 그 나쁜 놈들을 패주고 싶었다.

내 아이가 캐나다에서 불링을 당하다니!!

어떻게 캐나다에서??!! 

일단 진정을 하고 커뮤니티 노트에 오늘 있었던 일을 써서 그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 보냈다.

 

(캐나다에서는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전달 사항이 있으면 학교로 전화하면 담당하는 사무직원분에게 얘기를 하거나자동 응답기에 메로를 남기거나 커뮤니티 노트에 글을 써서 선생님과 전달 사항을 주고받는다.)

 

그날 오후에 스쿨버스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갔었다. 아이는 어느 때 보다 표정이 밝아 있었고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엄마, 오늘 그 친구 2명이 나에게 사과했어. 그래서 기분이 좋았어"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얼른 아이 가방에 있는 커뮤니티 노트를 꺼내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나의 아들을 괴롭힌 아이 2명을

교장실로 불러 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시고 나의 아들을 불러서 사과를 받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담임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들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주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적혀있었다.

 

아이는 사과를 받고 더 이상 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캐나다는 불링(집단 괴롭힘), 따돌림 , 인종차별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다고 들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 온라인 카페에서 읽었던 캐나다 수기에서 아이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학교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대처를해준다고 들었다.

그리고 부모가 안심을 할 수 있게 모니터링을 오랫동안 해주고 그것에 동반되어 필요하다면 심리치료도 같이 해주었다.

이번 일로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키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생활하다 보면 곳곳에서 자주 이런 일들을 겪게 된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고속도로 진입 전 경찰이우리 차를 세우길래 음주단속인가? 과속단속인가?했더니 뒷좌석에 카시트에 앉아 있는 우리 아이를 보더니 엄지척을 해주고 보내주었다.

 

차에 카시트가 없어도 벌금을 1,000불을 내야 하고 아이가 부모에게 맞았다는 얘기만 해도 부모와 아이는 바로 분리가 된다.

그리고 스쿨버스가 정차해서 아이가 버스에 타거나 내릴 때 스쿨버스 앞, 옆, 뒤에 있는 차들은 모두 정차를 해서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에 벌점이다. 

산모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퇴원할 때 카시트가 없으면 퇴원시켜 주지 않는다.

 

지인에게 얼마 전에 들은 얘기로는 캐나다에 한 학교에서 한국 아이 3명이 백인아이 1명을 왕따?를 시켰다는 이유로

아이들 3명은 각각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백인 아이 1명을 두고 한국 아이 3명이서 한국말을 썼다는 이유??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캐나다에서는 이런 왕따나 괴롭힘 인종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주 적극적으로 상황을 대처한다.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만약 나도 캐나다에서 살지 않았다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캐나다 사회로 발을 들여놓을수록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과 비교가 된다. 

외국에 나와 살아보니 애국자가 된다고 한국도 사람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캐나다에 살게 된 지 3년이 되었다. 불편한 점도 언어적인 한계를 느낄 때도 고향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나의 아이가 이런 안전하고 의식이 높은 나라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힘든 타향살이의 불편함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사진에 있는 아이들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스티커가 없어서 이렇게 올린다.

 

 

 

 

토론토의 날씨


토론토의 사계절을 두번 겪어보니 토론토의 기후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한국과 비슷하게 사계절이 뚜렷하나 겨울이 한국보다 조금 더 길고

춥다. 여름에는 건조해서 그늘에서는 서늘하고 불쾌지수를 높이는 

푹푹찌는 더위는 없다. 대신 햇볕은 한국보다 훨씬 뜨겁고 자외선이 강해서

선글라스 없이는 햇볕 아래에 다니기 힘들다.

그리고 꼭 썬크림을 바르는 것이 좋다.


오늘이 3월 25일이다. 아직 날씨는 영하에 있고 바람이 차다.

낮 시간에는 영상으로 웃돌긴 하지만 아직 춥고 쌀쌀하다.

겨울 패딩을 입고 다녀야 하는 날씨이다.



토론토로 건조한 바람이 분다.

그래서 토론토는 사계절 건조하다.

여름에는 건조해서 푹푹찌는 더위는 없지만 건조한 기후가

얼마나 사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토론토 생활 3년차가

되니 여실히 느껴진다.


나는 토론토에 거주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습도에 신경을 쓰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습도를 신경쓰지 않고 방치하게 되면 생각지도 못한 병들을 얻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토론토는 한국과 다르게 미세먼지가 없어 아이와 내가

건강할 줄 알았다.


캐나다는 날씨가 건조하고 난방을 히팅으로 하기 떄문에 겨울에는 

건조함이 극에 달한다.

그래서 2년 전  6살 된 아들이 잠을 자는데 코가 꽉 막혀서 입을 벌리고 자면서

숨쉬기가 힘이 드니 컥컥거리면서 새벽에 잠을 설쳤다.

그런일이 몇번 반복되고 나서  아이가 알러지가 생겼다.

알러지가 생겨 얼굴과 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와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다. 아이가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온다고 

병원을 가봐야 할것 같다고 했었다.


다행히 나는 치료 방법을 알고 있었다.

몇년 전 아이가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독한 항생제를

사용해서 약에 내성이 생겨 왠만한 독한 약도 잘 듣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도 기침은 그치지 않아 애를 태웠었다. 

그래서 한방도 알아보고 자연치료도 알아보다가

민간 요법으로 아이의 기관지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다행히 시기 적절하게 잘 써먹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기관지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아이에게 30분 정도 쐬게 하는 방법이다.

아니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30분 정도 물에 놀게 하면 된다.

욕실도 따뜻하게 습하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는 잠을 잘 때 숨을 편하게 잘 쉬면서 잘 잔다.

이렇게 조치를 취하고서는 더이상 알러지가 올라오지 않았다.


사람이 잠을 잘 때 꼭 입을 다물고 자야한다.

코가 건조해 코가 막혀버리며 입을 벌리고 자는데 그러면

폐로 차가운 공기가 바로 들어가서 면역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토론토는 건조하기도 하고 난방으로  히팅을 해서

습도 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가습기도 항상 돌려줘야한다.

우리도 빠듯한 형편이어서 처음에는 저렴한 가습기를

사용했지만 효과가 전혀 없어서 용량도 크고 성능도 우수한

다이슨 가습기를 사용중이다.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토론토에서 몇년 살다보면 한국에서는 없었던 

알러지가 생긴다. 이유는 건조함 때문이다.

건조하면 우리가 코가 아니라 입으로 숨을 쉬게 된다.

특히 수면중에....그렇게 되면 우리는 점점 면역성이 

떨어지게 된다.   토론토는 미세먼지 없어 공기는 깨끗하지만

건조함 때문에 습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자칫 건강을 해칠수도 있다.


남편 회사 동료는 인도 사람인데 아내가 인도에서는 없던

피부 알러지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고 다시 인도로 가면 

없어지고 다시 토론토로 오게 되면 생긴다고 한다.

한국분들도 한국에서는 없었던 알러지가 생긴 분들이 많다.

토론토는 산도 바다도 없어 습도가 생길 곳이 없다.

 토론토에서는 각별히 습도와 건강에 신경을 써야한다.

반면 벤쿠버는 태평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습도도 높으며 

따뜻하고 록키 산맥이 있어 공기도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해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가면 피부병이 다 낫는다.



남편에게 지금 회사에서 영주권을 받고 벤쿠버로 가서

살자고 말은 했지만 사실 토론토는 경제 도시여서 회사도 

많고 대학교도 많아 남편의 직장과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토론토에 사는 것이 맞지만  건강과 여유로운 삶을 원한다면

벤쿠버에 사는것이 맞다.

그런데 벤쿠버는 관광도시라 직장과 대학교가 많지 않고

또 기후적으로도 겨울은 우기에 들어가 6개월 정도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한다.   토론토에 사시는 분 중에 벤쿠버에 5년 거주중

우기때가 되면 우울증이 와서 적응을 못하고 토론토로 오신분도 있다.


참 세상에 천국은 없다


사람마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는냐에 따라 내가 

사는 곳도 결정이 되는것 같다.













토론토 생활비 (2019,  2월 가계부)


참고로 우리 가족은 세식구이고

토론토에서 주택을 구입했다.



주거 형태에 따라 생활비가

달라지겠지만  콘도나 아파트보다

주택을 구입할 경우 집 가격도 비싸고

그로 인한 대출비용도 있고 주기적으로

집 수리 비용이 든다.



내 또래의 분들은 대게 콘도에

많이 살고 있다.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을 꿈꿨기에

주택에서 살고 있다.

나름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



수입 목록

(캐나다 달러)


-남편 월급 :                     5,423

-tax 리턴  :                        140 

-아이 베네핏(양육 수당)    :   573.66  

(양육비는 곧 200불 정도로 떨어진다. 작년 남편이 학교를 다니면서 수입이 적어서 아이 양육비가 많이 잡혔다.  

수입에 따라 아이 양육수당이 조절이 된다.)



총 수입 6,137. 46 달러



지출 목록



-집 대출비(재산세 포함) :  2,861.3 

 

 재산세 450불 포함이고 매달 재산세를 낸다.


 한국에서는 재산세를 일년에 2번 2분의 1씩 분납하게 된다.


캐나다에 비하면 한국은 세금을 정말 적게 내는것이다. 

그만큼 복지가 잘 돼 있지 않지만..


여튼 재산세를 매달 내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에서 세금을 피하려고 

현금울 받고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나라에서 보호해 줄 수가 없다.


우리집 가계의 블랙홀은 집 대출비와 재산세이다.


한동안 집 유지가 힘들어 집을 팔고 대출비 없이 콘도나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갈까 고민도 잠깐 했지만 집을 팔 경우 집 가격의 5프로를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내야하고 양도세도 만만찮게 비싸고 이사비용을 다 합치면 아마 1억은 길바닥에 뿌리고 이사해야 한다고 그냥 수입을 좀 더 늘리는 방법을 모색해 보라고 주위분이 귀뜸해 주었다.


 이제는 이사를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캐나다는 집을 사는 사람은 취득세는 내지만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무료다.


집을 파는 사람은 집 값의 5프로를 중개수수료로 내야한다.


그리고 이제는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집 값의 15프로를 세금으로 더 내야 하는 법이 생겼다. 우리는 피했지만 영주권 없이 집을 사기에는 손해가 너무 크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도 영주권이 없는데 매달 내는 월세가 부담스러워 작은 아파트라도 살까 고민하다가 15프로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말에 낙담했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집이 문제다. 


우리집 지출의 반을 차지하는 집 대출금과 재산세, 언제쯤 여유가 생길까??


식비(외식비 포함) : 1,552.36 달러


식비는 사실 우리집이 좀 많이 나오는 편이긴 하다.

아껴 쓴다면 1,000불로도 충분히 살수 있다.


남편 학교 다닐때 아주 많이 아껴서 600불로도 살았었다.


요즘 나의 건강 문제로 유기농이며 비건 식품 구입이 늘어나면서 식비가 자연스레 늘었다.


 가계부를 쓰며 반성하고 있다


다음 달 부터는 정신차리고 아껴 써야겠다.



-교통비 (택시) : 112.7


-주유비: 92.8


-난방비: 205.1


-핸드폰,인터넷 : 150


-자동차 보험 : 183.2


 자동차 보험도 한국과 다르게 매 달 내야하고 처음에는 300불이 훨씬 넘었었다.  

1년 후 한국에서 10년 무사고 운전 증명서를 보험회사에 제출을 하니 보험료가 그나마 183불로 떨어졌다. 


차 한대로 살기가 불편해 한대 더 사고 싶지만 자동차 보험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집 보험 : 137.6


집 보험료도 주택을 구입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집 보험에 가입해야하고 매달 보험료를 내야한다.


-집 수리비 : 450 (가라지 문 수리비)


 주택에 사는 이상 이 비용은 항상 염두해 둬야한다.


작년 여름에는 지붕이 오래 되어서 지붕 수리를 했는데 4,000불이 나왔다. 

그나마 싸게 한 편이다.


얼마전 지하 천장에 물이 세고 있어 수리했다. 

아직 마감이 덜 됐는데 곧 400불이 더 나갈것 같다.


 콘도나 아파트는 이런 집 수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문화생활비: 227


잡화 :      180.3




총 지출비 : 6,152.36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



캐나다는 생활비가 많이 들고 

우리는 집을 사서 대출비가 많이 나오지만

집을 사지 않아도 월세로 2000불 이상씩 나간다.


캐나다로 오는 사람 중 큰 재산을 가지고

대출금 없이 집을 사는 사람은 극하 드물다.

다들 빠듯하게 살고 열심히 산다.

나도 곧 건강이 회복 되는데로 일을 해야겠다.



#토론토 #생활비 #캐나다 #이민 #유학



토론토에 사는 2년 6개월은 격동의 날들이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ㅅㅐ롭고 어려웠다.


그 고생은 다시 하기 힘들것 같다.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업 주부로 지내다가 

토론토로 와서 투잡, 쓰리잡을 뛰며

남편 학업이 끝날때까지 버텼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집을 사다보니 생활비와 남편 학비가 부족했었다.

그때는 열심히 벌면 되겠지 하고 당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캐나다의 슬로 라이프는

우리에게는 엄감생심이었고 



그때는 미래도 과거도 없이 그날 그날 버티는 삶이었다.



그래도 그때 나에게 희망과 힐링은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과  넓디 넓은 잔디가 깔린 공원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미세먼지였다.

아이를 낳고 두피와 귀쪽 피부가 지루성

피부가 생겨서 애를 먹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외출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잘 정도로 가려움에 시달려야했다.

뇌 속까지 가려운것 같았다.

피가 날 때까지 긁다보면 진물이 귀 안으로 들어가서

귀에 물이 찬것처럼 귀가 먹먹하다.


그런 생활들이 반복이 되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항상 나의 피부는 예민하게 반응했고

약도 발라보고 한약도 먹어보고 햇볕도 쬐 보고

사우나에서 땀도 내보고 운동도 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은 다 했지만

잘 낫지 않았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점점 심해지면서  나의 피부도 

성한 날이 없었다.




외출하기전 항상 기상청이나 미세먼지 어플에 들어가

위성사진을 보면서 그날 미세먼지의 상태를 확인했었다.


그때 내가 느낀 실망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으련만 

정부에서는 고등어 드립을치고

경유차 얘기를 했었다.

이게 말이여 방구여??!!



몇번이나 환경부에 전화해서 제대로 예보를 

해주지 않는다고 따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때 정부에서는 숨기기에 급급했었다.


남편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업체사람이 일본 사람이었는데

일본은 한참 전에 미세먼지를 예보하고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은 경보를 해주고 외출을 자제하라고 

방침이 내려온다고 했었다.

공기 청정기를 돌리는 곳도 많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은 초미세먼지를 측정하는 기계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항상 일본 미세먼지 어플을 확인했었다.

위성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미세먼지의

농도와 경로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그때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짙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나를 별나고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했었다.



 그 정도의 미세먼지 수치라면 건강한 사람도 기관지와

혈관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은데도

사람들의  미세먼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일했다.



한국에서 미세먼지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밤마다 나는 가려움과 사투를 벌였었다.

그리고 동네 이비인후과를 하루가 멀다하고 

다녔었다.



토론토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었지만

 파란 하늘 아래 미세먼지 없이 산책하는걸로

큰 위안을 삼았었다.



힘들지만 그래도 미세먼지 없고 자유롭게 외출이 가능하잖아?!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는날 남편이

나의 귀를 보더니 놀라면서 귀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나는 내 귀를 확인할 수가 없으니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말했었다.



말끔히 깨끗해진것은 아니지만 많이 호전되었다.



(반대쪽 귀 사진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사진 하나만 올린다.)



미센먼지만 없어도 이렇게 좋아지는구나

우리가 숨쉬는 깨끗한 공기의 고마움을 뼈절이게

느낄수 있었다.


 


요즘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 다들 나를

부러워하며  "너는 캐나다 잘 갔다"고 얘기를 한다.

친구들도 나의 고생담을 너무 잘 알기게 걱정도 많이 해주었는데

요즘에는 친구가 "나도 그 고생해도 괜찮으니 제발 깨끗한 공기속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공기가 좋지 않으니

아이들이 기관지염과 감기를 달고 산다.

그리고 내 친구는 미세먼지 측정기를 구입해서

가는 곳마다 측정을 한다.

친구 얘기로는 요즘 미세먼지가 더 심각해지고

앞으로는  더 심해질것 같다고 전망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 공기정화 프로젝트'로

베이징에 있는 공장들을 산둥성쪽으로 옮기고 있다.

산둥성은 한국의 서쪽으로 겨울, 봄에 서풍이 불면

고스란히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가 한국으로 날아온다.

정말 대책이없다.



나는 아무리 깨끗한 공기 속에 산다고 한들

가족들과 친구들이 한국에 있으니 항상 걱정이다.


여기에서도 이번에 한국에 다녀온 분들은 한국은 이제

더이상 살 곳이 못 된다고 하신다.

아이들이 야외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공기가 너무 나빠졌다고 걱정을 많이 하신다.


 

파란 하늘이 당연한 것이였는데 이제는 파란 하늘을 

보기가 힘든 대한민국이 되었다.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한국에 있을떄는

원망과 욕을했었는데

외국에 와서 보니 제발 한국이 건강하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 지인들이 아프지말고 건강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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