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뜻하지 않게 채식 주의자가 되었다.


한국에서 토론토로 오기 전 짐들을 정리하고

신경을 쓰고 긴장도 많이 되었다.

그리고 토론토에서 집을 사려고 많이도

알아보고 신경을 많이 썼더니

어느 날 우리 가족 모두 심한 감기에 걸렸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 있을때 항상 운동과 족욕,사우나를 하면서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기에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토론토에 와서 건강 관리를 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집을 알아보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하나에서 열까지 새롭고 어려웠다.

집을 알아보면서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계약을 

하려고 한국에 있는 돈을 캐나다로 가지고 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토론토로 오기 전 남동생에게 나의 인감 도장과 통장, 위임장을 맡기고 

와서 남동생이 서울 본점 하나은행으로 가서

토론토로 돈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었다.

 그럴려면 여기 토론토의 시간과 한국의 은행 영업시간을 맞춰야하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여튼 힘든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가족 모두 감기에 걸렸었다.

토론토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감기에 걸렸었는데

감기 증세가 여간 독한 것이 아니었다.

편도가 붓고 열이 나고 온몸은 근육통과

편도에 염증이 너무 심해서 침을 넘길수도 물을 

마실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변이 콜라색으로

나오는것을 경험했었다.

당황스럽고 놀랐었다.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병원에 갔었는데

병원에서는 건조해서 방광에 피가 역류해서 들어갔다고 (돌팔이)

말하며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항생제 먹고 소변 색깔이 괜찮아지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고

소변 색깔이 계속 콜라색이면 병원에

오라고 했었다.


며칠이 지나니 소변 색깔이 옅어지고 괜찮아 지길래

괜찮은가보다 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도 별 이상없이 감기가 나았다.

그러고 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토론토에서 열심히

살았었다.


1년 후 위가 아파 병원에 가서 소변 검사를 받았는데

소변 색깔은 괜찮은데 현미경으로 검사 했을때

미세하게 피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신장 초음파 검사를 했었다.

신장 초음파 검사 결과 정상으로 나왔었다.(신장 크기 검사)


나는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1년 후 어느날 갑자기 빈혈이 생겼다.

어지러워서 더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임신을 한 줄 알았다

임신 초기 증상이 빈혈이기에 임신테스트기를 썼었는데

임신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하니 빈혈이었다.

처음에는 빈혈 약만 잘 먹으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증상이 심각했다.


숨이 차고, 팔이 저리고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고 목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

병원에서는 계속 피검사만 하고 정확한 진단을 해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의 신분이 학생 비자 상태라 개인 보험을 들었었는데

스페셜 닥터(전문의)를 만나면 병원비가 커버가 되지 않았다.


그냥 클리닉센터 (보건소)에서 피검사만 열심히 했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보험 적용이 되지 않지만 응급실에 갔었다.

인터넷 카페에 물어보니 급할때는 응급실이 제일 빠르다고 얘기해서 

응급실에 갔었다.

병원비는 1300불(120만원)이 나왔었다.

너무 몸이 좋지 않아 어쩔수 없었지만 아깝긴하다.


응급실에 가서 소변검사 피검사 그리고 자궁,난소,신장 초음파 검사를 

했었는데 정상으로 나왔었고 방광염이라고 했다(여기도 돌팔이)

빈혈수치도 좋아졌었다.

한달 동안 열심히 빈혈약을 먹었더니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회사에서 의료보험카드가 나왔고

우리는 패밀리 닥터를 지정해서 본격적으로 검사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자가면역 질환 검사를 받았을때 양성으로 나왔었다.

24시 소변 검사에서 단백뇨와 혈뇨가 많이 나왔었다.

그래서 처음에 패밀리 닥터에게 루프스인것 같다고 

얘기를 들었을때 나는 또한번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루프스를 검색해보니 온통 무서운 말 뿐이었다.

그때 나의 마음은 시한부를 통보 받은 기분이었다.

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오열했었다.



나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패밀리 닥터가 스페셜 닥터로 바로 연결시켜 주었다.

캐나다는 위중하지 않으면 기다려야 하는데 

급한 환자들은 바로 스페셜 닥터와 연결을 시켜준다.


스페셜 닥터를 만나서 신장 조직 검사를 했었다.

다행히 루프스는 아니고 IGA신장염(자가 면역질환)이었다.

당연히 이것도 어렵고 무서운 병이지만 처음에 루프스라는

전신 자가면역질환 판정을 받아서인지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내가 자가면역질환 신장염 판정을 받고

한 일은 자연 치료로 신장을 낫게 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양방에서는 신장은 나빠지면 절대로 좋아질수 없다였다.

생로병사나 양방의사들이 나와서 하는

프로그램들에서는 신장은 한번 나빠지면 좋아질수 없기에

식이 조절을 해서 만성 신부전증의 시기를 늦추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과일,야채, 염분이 있는 음식등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이 너무 많았다.




나는 자연치료의 경험을 익히 해본적이 있어서

신장 자연치료의 방법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내가 찾은 솔루션은 음식이었다.

현미, 채식


10년 전에 방영된 mbc스페셜

"목숨걸고 편식하다"1,2,3편을 모두 보았고

황성수 박사님의 현미, 채식으로 환자들을 낫게 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조병식 의사의 자연치료의 

책을 읽고 동영상을 보면서 

확신을 가지고 현미 채식을 하게 되었다.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해야한다.



황성수 박사님의 말씀 중

현미 채식을 할 경우 효과가 미미 할 것이라고 하는데

효과가 굉장히 빠르고 좋다고 하셨다.



나는 현미 채식을 하고 딱 한 달 후 

24시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했었다.

놀랍게도 소변의 혈뇨와 단백뇨가

반 이상 줄었다.




지금 우리 가족은 4개월째 현미 채식 중이다.

몸의 변화는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효과를 보고 있다.


첫째 ,변이 잘 나온다.

둘째,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셋째,  발의 각질과 무좀이 사라졌다.

넷째, 하지정맥류의 종아리 통증이 사라졌다.

다섯째, 생리 전 입안의 혓바늘이 생기는 증상이 사라졌다.

여섯째, 생리통이 없어지고 생리혈이 맑아졌다.

일곱째, 소변의 혈뇨와 단백뇨가 반이상 줄었다.




불과 3개월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효과는 엄청나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좋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병에 걸릴수 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이번 일도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 할 수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서 감사하고 나의 삶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흥분되고 신이난다.

앞으로 식품 대체의학 공부를 하고싶다.







 의사 조병식 원장님 








채식으로 만든 손님 밥상








토론토 채식 식당"프레쉬"









나의 현미 채식 밥상 (컵에 있는 것은 블루베리 토마토 야채 주스)










시금치 버섯 토마토 파스타(현미로 만든 파스타면)







출출 할 때 챙겨먹는과일들 








아보카도와 곶감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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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처음 토론토에서 거주할 곳을

고민했을때 최대한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캐나다에 와서 캐나다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려면

최대한 한국 사람은 피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ut


인생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것은 탁상공론이었다.ㅎㅎ


사람의 제일 최상위의 본능은 음식이었다.

우리가 여태껏 먹어온 음식은 절대로 바꿀수가 없다이다.!!

그래서 여기 토론토는 나라별로 마트가 많다.

중국 마트, 한인 마트, 이란 마트, 유대인 마트 등


처음 토론토에 와서 토론토에 대해 일도 몰랐을때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서

빵과 과일을 사먹었다.

며칠 그렇게 먹고 나니 속이 니글니글

빵을 아무리 먹어도 먹은것 같지도 않고

빵을 먹을수록 진한 국물의 김치찌개와 한국 토속 음식들이

간절해졌다.ㅠㅠ


결국 며칠만에 우리는 한인 마트를 검색해

한인 마트에서 김치와 라면,김 등을 

사서 먹었다.

그동안의 느낌함이 싹~내려 가는듯 했다.

 


아무리 캐나다 문화를 배우고 캐네디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도 한국 마트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 되는구나 ㅠ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예전 내 친구는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김치를

 담궈 먹었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었는데

절실히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외국 생활을 하면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던 것들이

 노력이 필요하게 되고 감사한 것들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캐나다에서도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놀스욕이다.

그리고 우리 집은 한국마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

덕분에 곶감이며, 김치, 갓 김치, 한국 배추, 고추장, 된장등

한국에서만 먹을수 있는 것들을

여기 토론토에서 다 먹을수 있어서 편리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내가 토론토에 살고 있어서

한국 TV프로그램, 뉴스는 보지못하고 한국 음식도 

못 먹는 줄 알고 있다.

어제도 상주 곶감을 사먹고, 짜장면, 비지찌개를 사먹고' 나 혼자

산다'와 '해피 투게더'를 보며 한 주의 스트레스를 날렸다.ㅎㅎ


물론 토론토에서 거리가 있는 동네는 

한인 마트가 없어서 큰 마음을 먹고 이 동네로 와서 한동안 먹을 

한국 음식들을 차로 가득 사서 가기도 한다.


우리는 사실 이 동네에 처음 살게 되었을때

주위 한국 분들이 집을 좋은 위치에 잘 샀다고 하며 

편하고 좋을거라고 했는데 

살아보니 한국 마트가 가까워서 편리하고 좋다.



1년 전 우리 집 작은 방에 렌트로 살고 있었던

한국 아가씨는 위니펙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영주권을 받고

토론토로 와서 임시로 우리집에 살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한인마트를 가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위니펙에서는 절대로 볼수 없는 광경이고

한국이랑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수 있냐고 굉장히 놀라워했다.

ㅎㅎ





그녀는 30대 초반이었는데 홀연단신 캐나다 위니팩에 가서

 씩씩하게 케네디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며 영주권을 받고 토론토로 왔었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고

캐네디언이 되려고 노력했었다.

그때 한창 대선이었는데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들썩거리는 스캔들이 났었는대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을 차단하고 캐나다 생활에 집중을 하는 

그녀도 음식은 어떻게 하지 못했다.


우리가 쉐어하는 냉장고에 항상 김치며 떡볶이며

한국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외국에 와서 제일 끊기 힘든게 

한국 음식이다.


우리 가족은 며칠 전 배추 김치 8포기를 사서

김장도 했다.


우리 집 근처에는 한국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퀄리티도 높은 편이다.


윈저에 사시는 남편 사촌 누님도

지난 주 토론토에 여행 오셨다가 한국 한식 식당에서

우리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셨는데 굉장히 만족해 하시며 좋아 하셨다.


윈저에도 한국 식당이 있긴 하지만

퀄리티도 낮고 다양하지 못 하다고 하셨다.


김치찜, 냉면, 순두부 찌개,돈가스를 먹었는데

밑 반찬도 깔끔하게 잘 나오고 한국의

왠만한 식당 보다도 괜찮은것 같았다.






 외국에서 살아보니 내가 여태껏

당연하게 먹은 음식들이 나의 고향이고 나의 안식처인것이다.


어떤 위로의 말보다 때론 진~한 된장찌개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2016년 8월 25일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모든것들을 정리하고 

캐나다 토론토에 오게 되었다.

설레고 두렵고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호기롭게 캐나다의 생활이 시작 되었다.


남편은 캐나다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컬리지에 입학하였고 수업이 시작 되었다.


우리는 처음 캐나다에 도착해서 임시로 거주할 집이 

필요해 게스트 하우스에 일주일 머물렀는데

한창 성수기 때라 방이 없어 지하에 지내게 되었는데

참 불편했다.

삐그덕거리는 2층 침대에  쾨쾨한 지하 냄새..

지저분한 화장실 

주방도 같이 쓸려니 신경이 여간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홀연단신 혼자라면 게스트 하우스가 가격도 싸고 

편하겠지만 가족 단위로 게스트 하우스를 사용하기에는

아이도 어리다 보니 불편했다.


남편이 인터넷 카페로 임시로 있을 집을 다시 알아보다가

나의 로망인 캐나다 주택을 계약했는데 그때는

마당이 있는 캐나다 주택에 산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여태껏 아파트에만 살았었는데

한국에서도 항상 주택에 살고 싶어 집들을 많이 알아보고 다녔다.

남편의 반대로 몇번 불발 되었지만 

항상 마당이 있는 집을 꿈꿔왔던 터라 기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두달여 살았던 그 캐나다 주택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후진 집이였는데 처음와서 경황이 없어 

그렇게 그 돈을 주고 살았던것 같다.

한달에 2,400불

방 하나에 작은 주방, 작은 화장실.

평수로 치면 5평 정도.

옛날 주인집 옆 초라하게 셋방살이 하는 느낌

가격은 멋드러진 집 하나를 독채로 빌리는 가격이였는데..

주인집과 붙어있어 소리가 다 들리고 불편했다.

마당은 수영장이 있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아서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지저분했다.

그 집 주인분이 이란분이셨다. ㅎ ㅎ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산 집으로 들어오기전 

콘도에서 두달여 살았다.

 


한국에서 우리의 짐들은 현대해운 해외이사를 통해 배로

토론토로 들어오게 되는데

도착하면 콘테이너에 옮겨져 우리가 정착할때까지

보관해 준다고 했다.

물론 보관비용은 날짜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것이 새롭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캐나다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토론토의 집 렌트비가 비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서 그 돈이면 

차라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리얼터를 선정해 

집을 사려고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다.


캐나다는 한국과 달리 부동산 중개업소 한 곳을 

지정해 계약한 다음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



그때는 한창 셀러 마켓이라 집을 내놓으면

사려는 사람이 많아 경매가 붙는 방식으로 집을 

팔았다.


리얼터가 보여주는 집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금액보다

항상 웃돌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토론토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지로 

집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남편의 학교와는

거리가 있어 다시 토론토에 집을 보게 되었는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두 달 정도 열심히 알아보고 다니던 중

동네 시세 보다 싸게 나온 집이 있었다.

집을 구경을 했는데 주인분이 홍콩 분이셨다

할머니는 아프셔서 집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1층 거실에 침대를

놔두고 생활하고 계셨다.

(캐나다는 보통 2층이 침실이다.)


집 안이 어둡고 오래되어서 모든것들이

색이 바랬ㄷㅏ

사실 나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 되었기에 

차라리 상태가 좋지 않으면서 싼집을 찾고 있었다.


가격이 시세보다 싸게 나와서 사람들이 

계약을 하려다가 잘 성사되지 않았다.

이유인 즉슨 클로징 날짜(입주 날짜)가 애매했던 것이다.

11월20일에 입주 할 수도 있고 12월 20일,1월 20일에

입주를 할 수 있는 상황이고 입주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

한달 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집 주인분은 연로하셔서 요양원으로 들어가실려고 했는데

그 날짜가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호재였다.

어차피 우리는 임시로 살고 있는 집에 연장만 하면 되었고

우리의 이삿짐도 콘테이너에 보관중이라 날짜에는상관이 없었다.

입주 날짜가 길어지면 돈만 좀 더 지급하면 끝이었다.

돈도 은행에 보관이 되어 있어서 입주 날짜에 지장이 없었다.


 

다른 바이어들은 싼 가격에 계약을 하려다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이 집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럴려면 입주 날짜가 

정확해야 집을 팔고 날짜를 맞출수가 있는데

여러가지로 복잡한 상황이 생길것 같아

포기하게 된 것ㅇㅣ다.

그래서 그때 우리는 거품이 다 빠진 착한 가격에

캐나다에 집을 장만할수 있었다.




살아보니 이 동네가 참 편리하고 살기가 좋다

한국 마트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우리집 쪽으로 들어오면 거리도 쾌적하고

조용하고 이쁘다.


캐나다에 정착하는 제일 큰 일을 운좋게 해냈다.

기특기특!!





정확히 2년 6개월 전에 토론토에 입성했다.



토론토에 오기전 집 문제로 인터넷 카페와 책을 읽으며 

나름 열심히 알아보았지만 결론은 집을 사자였다.



한국처럼 전세가 없고 

집을 사지 않는 이상 월세이다.



그리고 그 월세가 한국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가격이다.

 보통 3가족이 거주할수 있는 콘도는

대략 2,000불(200만원)정도..(방 1칸.주방,거실,화장실)



도시와 다운타운의 거리에 따라 2,000불에서

올라가기도 하고 조금 내려간 가격이다.



토론토에서 벗어난 지역은 가격이 더 싸지만

우리는 남편의 학교 문제 때문에 토론토에 거주해야만 했다.



그 돈이면 차라리 대출을 좀 받아서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좀이 아니라 많이 대출받음)

결론은 그때 안샀음 어쩔뻔 했나!!이다.



우리가 집을 사고 몇 달 후 외국인이 집을 살 경우 

세금 15프로를 더 내야 하는 법이 생겼는데

몇 달 상간으로 피했다.



그리고 우리가 산 집 방 2칸을 한국 여학생들에게

렌트를 해서 한달에 수입을 1,300불씩 벌어들였다.



대출은 재산세 합쳐서 2,800불씩 내고 있지만

그 덕분에 열심히 살았고 돈도 까먹지 않고

생활력이 강해졌다.



아마 집을 사지 않았으면 한국에서 집을 팔고

들고 있던 돈이랑 남편 회사 퇴직금을 

야금 야금 까먹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도 나도 주위 분들도 참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랑스런 우리 집



캐나다 주택은

보통 지하 ,1층, 2층, 가라지(주차,창고),마당으로 되어있다.




1층은 거실,주방, 화장실

2층은 방, 화장실

지하는 보통 세탁실과 방, 화장실 

(지하를 공사해서 세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





2층에 있는 작은 방 2개를 룸렌트 했다.






   

   

      





거실과 마스터룸, 지하 사진은

다음 글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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